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진경호 2016.07.02 22:09 조회 수 : 512

"너희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공급해 주심을 통해 이것이 나의 구원으로 바뀔 줄 내가 알므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에 따라 내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항상 그러하였듯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높이고자 하나니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그러나 내가 육체 안에 산다면 이것이 내 수고의 열매이니라.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택할지 알지 못하노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둘 사이에 끼어 있느니라. 그것이 훨씬 더 좋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 안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해 더 필요하니라. "(빌 1:19-24)

죽음이야말로 우리 삶 가운데 오직 하나뿐인 확실한 것이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하여 Woody Alen이 한 말과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내가 죽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죽음이 찾아올 때 그곳에 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죽음은 이처럼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것이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은 마치 코브라 앞에 선 암탉과 같다. 우리에게 가장 철저하고도 단호한 행동을 취하라고 요구하는 죽음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싸늘한 미소 띤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는 그 불안한 생각은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리 미쳐 날뛰든 오래지 않아 주위에 놓인 다른 것들과 구별할 수 없는 한 줌의 흙과 뼈다귀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그 대적을 침챃하게 맞이하든, 비명을 지르든, 혹은 억지로 지어낸 웃음을 띠든 아무런 상관없이 우리는 그곳에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움으로 바라본다. 죽음은 우리의 삶 전체를 덮는 커다란 그림자처럼 불쑥 나타난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받은 가장 큰 축복 가운데 하나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사도 바울처럼 말할 수 있다.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사도 바울은 죽음을 이득(gain)으로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죽음을 상실로 생각한다.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뒤에 남은 사람들에게 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이득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 생의 삶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과 육체 안에 사는 것 사이에 끼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생과 천국 사이의 차이점은 나쁜 것과 좋은 것 사이의 차이점이 아니다.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의 차이점이다. 그리스도 안의 이 생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삶은 더 좋은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고 고백했다. 천국으로의 이동은 약간 더 개선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이득은 엄청난 것이다. 천국은 이 생에서의 삶보다 더욱 좋은 것이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비교해서 제시하고 있다. 

"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은 영원하니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우리가 옷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다듬으시고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
고린도후서 4:17-5:5).
사도 바울이 이 말씀에서 전개하고 있는 대조는 일시적인 것과 영구적인 것, 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사이의 대조이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성경적인 구원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구원받은 사람은 죽음을 고향 방문이나 졸업식, 혹은 하나의 통과의례로 볼 수 있게 된다.
죽음은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 다음 삶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육체가 죽은 순간 비록 육신의 몸은 죽지만 그 혼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산다.  
당신은 어떤가? 진정 구원받은 사람인가? 죽음이 이득이 되는 사람인가?    

 

2012-07-02 

김희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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