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된 성경(마태복음 1:24-25) # 4

진경호 2016.07.02 22:11 조회 수 : 466

복된 소망 침례교회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이준승 목사님의 글입니다. 
 

권위역 킹 제임스 성경

개역 성경

요셉이...그녀의 맏아들을 낳기까지 그녀를 알지 아니하다가

요셉이 ...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Joseph...knew her not till she had brought forth her firstborn son: (KJV)

Joheph...kept her a virgin until she gave birth to a Son (NASV)

Joseph...he had no union with her until she gave birth to a son (NIV)

권위역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다른 성서들은 마태복음 1장 25절에서 거의 대부분이 한결같이 "그녀의"(her)라는 단어와 "맏"(첫; firstborn)이라는 단어를 삭제시켜 버렸습니다. 이 두 단어의 삭제는 엄청난 교리적 심각성을 가져옵니다. 지난 호에서는 "그녀의"를 삭제함으로써 일으키게 되는 교리적인 문제를 살펴보았고, 이번 호에서는 "맏"을 삭제함으로 발생하게 되는 교리적인 문제와 그 삭제 의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맏아들"이라는 말은 마리아가 둘째, 셋째 등의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이러한 성경적인 교리를 부인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마리아의 신성"을 입증하기 위해 마리아는 숫처녀로서 예수님만을 낳았고, 예수님을 낳기 전에도, 낳는 동안에도, 낳은 후에도 계속 숫처녀였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을 "마리아의 종신 처녀설"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은 이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형제들은 친형제들이 아닌 사촌 형제들이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형제(아델포스)라는 말은 조카, 혹은 사촌이나 친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명백히 사촌(cousin)이라는 말이 누가복음 1장 36절에서 사용되고 있고, 또 조카(brothers son)라는 말도 창세기 12장 5절과 14장 12절에서, 조카 딸(brothers daughter or sisters son)이라는 말도 창세기 24:48과 골로새서 4장 10절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위탁한 사실을 들어서는, 마리아에게 다른 아들들이 있었다면 왜 그들에게 마리아를 맡기지 않고, 자신의 제자인 요한에게 부탁하면서 맡겼겠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이 사실을 부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그때까지도 예수님의 형제들은 다른 유대인들처럼 그분을 믿지 않는 불신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야 그분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그분을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고린도전서 15:7). 예수님의 형제들의 이름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특히 마태복음 13장 55절과 마가복음 6장 3절에 그 이름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세스와 시몬과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마태복음 13:55).

위 구절들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한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집안과 그분의 형제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형제들은 적어도 6명, 곧 남동생 4명, 여동생은 둘 이상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에서도 주님과 함께 카나안 혼인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을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이라는 세 부류로 구분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7:3-5에서는 그분의 형제들의 불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시편 69편 8절의 성취를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내 형제들에게는 낯선 자가 되었고, 내 어머니의 자녀들에게는 타국인이 되었나이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이 부활하고 난 후에야 부활을 목격하고서는 그분을 믿었고, 믿은 후에는 "그분의 형제"라는 칭호에서 다른 믿는 이들에 의해 "주님의 형제"라는 칭호로 바뀌어져 불리워졌고(고린도전서 9:5), 사도행전을 비롯하여 신약의 여러 서신서들에서 그 이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그분의 부활을 목격하고 개심한 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사도행전 15:13), 후에 야고보서를 기록한 기록자가 되었습니다(야고보서 1:1). 이 야고보는 제베대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도행전 12:1-2에서 이미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형제인 유다도 신약의 한 책을 기록했습니다(유다서 1:1). 주님의 형제들은 개심하고 나서는 스스로를 "주님의 형제"라 부르지 않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을 낮추어서 부르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만한 사항입니다(야고보서 1:1; 유다서1). 사도행전 1장 14절을 보면, 이 예수님의 형제들은 모두 개심하여 예수님을 믿고서는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명령하신 성령님을 받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기다렸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적인 증거들을 통해 볼 때, 킹 제임스 성경이 "맏아들"이라고 번역한 것은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로마카톨릭은 마리아의 신성을 옹호하기 위해 마리아의 무염시태설(무죄잉태설), 지속적 무죄성(종신 처녀설), 부활승천설(성모몽소승천), 은총의 중재자, 기도의 중보자, 구원의 어머니, 협동 구세주, 하나님의 어머니 등과 같은 거짓되고, 신성모독적인 교리들과 용어들을 만들어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참람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상들은 태양신 바알을 숭배하는 바빌론 이교종교에서 유입된 것입니다. 창세기 10장을 보면 이러한 숭배가 쿠스의 아들 니므롯(Nimrod)에 의해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니므롯에게는 세미라미스(Semiramis)라는 사악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니므롯이 죽자 세미라미스는 죽은 니므롯이 태양신 바알이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사생아를 낳게 되자, 니므롯이 환생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아이의 이름을 "생명의 아들"을 뜻하는 탐무즈(Tammuz)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이 아들이 초자연적으로 잉태되었으며, 창세기 3:15에서 약속된 씨, 곧 구세주라고 주장하면서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니인 자신을 경배할 것을 명령했고, 결국 자신을 "하나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이라고 천명했습니다. 후에 이 탐무즈는 그녀와 결혼하여 그녀의 아들이자 남편이 되었습니다. 탐무즈도 그의 아버지 태양을 숭배할 것을 명령했고, 이 때문에 결국 그는 살해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교도들은 매월 첫날을 구별하여 탐무즈를 위해서 우는 날로 정했습니다(겔8:14). 이 하나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는 이교숭배 사상은 창세기 11장에 나타난 사건, 곧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란케 하시고, 사람들을 온 지면으로 흩으신 사건을 통해 온 땅으로 퍼지게 되었고, 후에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영적간음과 타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던 것입니다(예레미야 7:18, 44:17, 44:18,19). 로마 카톨릭이 태동하면서 이 이교 숭배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지금의 "마리아의 숭배"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카톨릭이 만들어 놓은 석상들은 모두 이와 같은 숭배물에서 유입한 것들입니다.

이 사실만 보아도 우리는 로마 카톨릭의 정체를 알 수 있고, 로마 카톨릭과 야합한 자들이 만들어 낸 성서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또 한 번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The Two Babylon, by Alixander Hislop, Loizeaux Brothers Pub.와 New Age Bible Versions, by G. A. Riplinger, Bible Believers Bookstore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하나의 단어가 삭제되거나 오역되는 것이 성경의 기본 교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의 고찰을 통해 우리는 또 한번 킹 제임스 성경의 정확성과 탁월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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