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의 원리

진경호 2016.07.02 22:20 조회 수 : 266

훈련의 원리  -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모든 훈련에는 기본 원리가 있다. 
먼저 주의 깊게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훈련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뜻이 무엇인지 묵상해 보자. 그것은 주도면밀한 생각과 진지한 목적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영혼을 우리가 빚고, 다듬고, 틀을 세워 나가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거룩하고 막중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간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그에게 주시리라." (약 1:5).

1. 훈련은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능가한다. 
가르치는 것은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도록 이해시키는 것이다. 반면에 훈련은 무엇을 시키면 반드시 행동에 옮기도록 아이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또한 가르침은 아이의 정신을 다루는 반면 훈련은 의지를 다룬다. 

2. 예방이 치유보다 낫다. 
진정한 훈련은 실수를 바로잡기 위함이 아니라, 실수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가 순종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지도하여 그것이 쉽고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하는 것과, 그 일을 할 때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된 훈련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이다. 

3. 습관이 원리보다 앞서야 한다. 
습관은 일정한 경향과 방향을 지시해 주고, 일정한 행동을 쉽고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며, 그 원리에 따라서 순종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줌으로써 개인을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4. 감성 계발이 판단력 계발보다 우선한다. 
유년 시기의 특징은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다. 부모는 선한 사람들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과, 선한 것에 호감을 갖게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좋다. 이런 노력 없이 좋은 습관을 독려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5. 본보기는 교훈보다 훨씬 더 낫다. 
훈련의 힘은 우리가 하는 말과 가르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과 처신에 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이상과 고상한 목적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의 강한 소욕이나 이론이 아닌 실제로 훈련을 행하는 우리의 의지와 실천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살았던 삶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주님의 참된 제자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며, 이것은 아이들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6. 끌어당기는 사랑이 요구하는 율법도다 더욱 중요하다. 
자녀 훈련은 자기 희생적인 삶, 즉 자기 자신이 아닌 상대방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삶을 요구한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주셨다. 어머니의 사랑은 바르게 표현되어야만 한다. 율법은 오직 죄와 진노로 역사한다. 그러나 사랑은 생각과 힘을 통하여 자신을 내어주어 상대방을 위하여 살며 상대방 안에서 살아가고, 더 연약한 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불어넣어 준다. 사랑은 감동을 일으키며, 그 감동의 힘이 바로 훈련의 비결이다. 

아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천국의 특성 중 제일의 특성은 평온함이다. 생후 이 년이 된 아이에게서도 이 성품을 가꿔 나갈 수 있다는 다음의 견해는 깊이 음미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유년기 때부터 위험한 성격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질들을 미리 교정해 나갈 수 있다. 도덕적 성향에 건전한 영향을 행사하는 어떤 습관들은 성격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이전의 유아기에도 길들일 수 있다. 내적인 고요함은 아이의 불안한 소욕을 진정시킬 것이며, 아이에게 배어 있는 친절함은 자기를 향하던 관심에서 벗어나 상대를 향하여 친절한 마음을 느끼게 할 것이다. 
내적인 고요함은 외적인 고요함으로 맺어진 열매이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이유 때문에 유아들은 될 수 있는 한 심하게 울어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이런 저런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아이들의 마음을 습관적으로 고요한 상태로 지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다은 많은 요소들 중에서도 아이들의 도덕성에 가장 필요한 특성이라고 볼 수 있는 습관을 잃게 되면, 아이는 나약하고 우유부단한한 성격으로 자라게 된다. 일단 흥분하게 되면 아이들의 신경은 정상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건강과 성격 두 가지 모두 고통을 받게 된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악을 예방하는 수단으로 길게 논하는 것이 아니다. 고요함으로 품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도덕적인 성품이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영혼과 천국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상태는, 오직 마음이 주변에 있는 모든 것과 서로 화평을 이룰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제는 이런 상태를 우리 가운데서 찾아보기가 이렇게 힘들게 되었을까?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 자신이 그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이 행복한 마음의 상태를 어린아이들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분명히 아이들을 지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지루하다"는 것은 영혼이 무기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들을 신나게 해 주려는 방법에 과도하게 변화를 주게 되면 이것보다 더 악을 부추기는 것은 없는 둣하다. 유아기 때에 고요함을 즐기면 즐길수록 이후에 그 아이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즐거움과 환희를 찾아보기 힘든 상태에서도 고요하고 상쾌한 기분은 지속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들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물건에 열중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물건은 고요한 대상이라서 너무 열정적으로 아이들의 흥미를 끌지 않는다.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간에 말이다. 

XE1.11.6 Layout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