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심(傷心)과 우울증이 밀려올 때

진경호 2016.07.02 22:17 조회 수 : 431

그리스도인들은 우울증에 빠진 경우에도 그 사실을 인정하길 꺼려한다. 불행이도 우울증을 치욕(恥辱)으로 여겨, 걱정거리를 인정하고 해결하기를 자꾸만 미루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는 등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기꺼이 경험을 들려주면서도 우울증의 경우는 다르다. 분명히 적임자가 많을 것 같은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성령 충만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해 가면 결코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라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그러나 흔히 그렇게 믿는 것이 사실이다.

의기소침(意氣銷沈)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낙인이 찍힌다. 심지어 우울증이 죄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죄 때문에 우울증이 생기는가? 물론이다. 죄책감, 우울증, 문란한 관계 등 죄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은 참 많다.

그러나 우울증이 죄는 아니다. 비록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며칠, 때론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나쁜 그리스도인 혹은 경건(敬虔)치 아니한 그리스도이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여러분이 진짜 사람(인간)이라는 뜻일 뿐이다.

살다 보면 우울(憂鬱)해질 수 있다.

누구나 때로는 삶에 짓눌릴 수 있다. 우리 모두 감정의 기복(起伏)을 겪는다. 우리 대부분에게 그것은 하루 이틀 혹은 한두 주 후 가라앉는 주기적인 현상일 뿐이다. 때로는 소중한 것을 잃거나 괴로운 인생경험을 하고 난 후, 몇 달 동안 깊은 슬픔과 낙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 모두 실망할 때가 있다. 우리는 갈등한다. 분통이 터지는데 도무지 해소할 데가 없을 때도 있다. 빡빡한 일정, 죄책감, 누군가에게 자꾸만 의지하려 드는 경향, 허다한 문제와 갈등 등과 씨름해야 할 때도 있다. 하나같이 우리를 무기력(無氣力)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우울증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 결국 우리는 타락하고 죄 많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여러분이 심란(心亂)해지고 우울증에 빠진다고 해서 그 때문에 하나님이 놀라시거나 실망하지 않으신다는 사실만은 꼭 알았으면 좋겠다.

위대한 지도자들도 우울증(憂鬱症)과 씨름했다.

우울증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성경에는 낙심과 절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엘리야는 우울증과 피로에 지친 나머지 목숨을 거둬 달라고 기도했다.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으시자 크게 낙담(落膽)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태어난 날을 한탄했다. 욥의 아내는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있는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충고했다.

마르틴 루터, 존 번연, 찰스 스펄전 같은 유명한 영적 지도자들도 우울증에 시달렸고, 윈스턴 처칠이나 아브라함 링컨 같은 정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울증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감기 정도에 해당하는 흔한 정서(情緖) 장애로 볼 수 있다. 우울증은 증가 추세에 있고 미국 인구의 20%가 어느 정도씩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우울증은 이제 가장 흔하고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남녀 모두 우울증에 걸릴 수 있지만, 여성이 우울증과 기분 저하(低下) 장애를 겪을 확률이 남성보다 두 배나 높다.

하나님을 크게 보면 문제가 작아 보인다.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일도 엄청나 보인다. 모두 관점(觀點)의 문제이다. 작은 문제를 꼭 끌어안고 거기에만 초점을 맞춘 사람에게는 무엇이 보이겠는가? 모든 것을 그 문제의 렌즈를 통해 보게 된다. 
아삽은 할 발 물러나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울증에 빠지면 희망을 잃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커 보이고 하나님은 멀어 보인다면 버거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희망은 희미해진다.

희망을 가지려면 먼저 하나님이 크신 분이시라는 것과 어떤 문제도 그분에 비하면 작다는 사실을 재발견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소망과 의욕이 되살아난다. 아삽이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주목하여 보고 여러분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오 하나님이여, 주의 길이 성소에 있사오니 누가 우리 하나님같이 위대하신 하나님이니이까? 주는 이적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주께서 주의 능력을 백성 가운데 밝히 보이셨으며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아들들을 구속하였나이다. 셀라. 오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무서워하며 깊음들도 소동하였나이다. 구름들이 물을 쏟고 하늘들이 소리를 보내며 주의 화살들도 널리 날아갔나이다. 주의 천둥소리가 하늘에 있으며 번개들이 세상을 비추니 땅이 떨고 흔들렸나이다.”(시 77:13-18).

 

2010-07-12

김희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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