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1년, Jonathan Edwards(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들의 발이 정한 때에 미끄러지지라"(their foot shall slide in due time)는 신명기 32:35을 본문으로 작성한 긴 설교 원고를 그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는 원고를 들고 눈 가까이 댄 채 요즘 설교자라면 거의 하지 않을 방식으로 설교를 했다. 그러나 그가 설교할 때 회중은 감정에 복받쳐 신음하며 애통했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회중을 지옥 불 위에서 가느다란 줄 하나에 매달려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언제라도 그 줄을 끊어버리고 그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하실 수 있다고 경고했다.  Jonathan Edwards는 그들이 아직까지 지옥에 있지 않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설교하는 동안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흐느끼는 소리는 더 커졌다. 그는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후에야 설교를 계속할 수 있었다.
 
성령님께서 그의 설교에 너무나 강력하게 역사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옥에 빠지지 않으려고 의자를 붙잡기 시작했다. 교회 밖의 어떤 힘 센 남자들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무 둥지를 붙잡았다. 어떤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 날 5백 명이 그의 설교를 듣고 구원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설교가 출판될 때, 출판자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지금은 "건강과 부" 또는 번영(繁榮)의 복음이 당연하게도 강한 호소력을 갖는 "자기 중심 세대(me generation)", "내게 득(得) 되는 게 뭔데?"의 시대다. 그래서 지옥과 같은 부정적인 주제를 싫어하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얼마든지 긍정적인 메시지가 많은데, 왜 부정적인 지옥의 형벌에 대한 메시지를 말하느냐고 불평을 한다. 그것은 적극적인 철학을 강조하는 현대의 철학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옥은 천국과 함께 성경이 가르치는 엄숙한 주제이다. 성경은 우리가 마땅히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야 할 진리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지옥에 관한 진리이다. 지옥은 어떤 곳인가? 그곳은 불이 타고 있는 장소이다. 그곳은 고통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또 지옥은 어둠의 장소이다. 그곳은 하나님의 긍휼이 완전히 거두어진 곳이다. 

다시는 희망이 없는 곳, 어떤 기도도 응답될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너무나 끔찍하고 무서운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손만 가지고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불공평한 게 참 많다. 그러나 공평한 게 더러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죽음이다. 
죽음의 순간만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히 9:27).  모든 사람은 다 반드시 죽는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지만 죽음이라는 불청객은 정확히 찾아온다. 

찾아오되 년령순으로 번호 정해 놓고 찾아오는 게 아니다. 젊다고 나중 죽고 늙었다고 일찍 죽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히 9:27). 죽음이 끝이라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다. 사탄에게 속아서 그렇게 되기를 바랄뿐이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단 죽으면 그 행선지를 영원히 바꿀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영원의 세계에는 두 곳이 있다. 천국과 지옥이다.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져 살거나 하나님과 영원히 붙어사는 것이다. 
여러분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죽은 뒤에 어디로 갈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가? 오늘 이 순간이 여러분의 생을 마감하는 날이라 할지라도 아무 두려움이나 주저함 없이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천국에 간다는 분명한 성경적인 확신이 있는가?    

 

 

김희옥 목사 

부산성서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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