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목사나 성도가 말하는 가장 민감한 주제들 중 하나가 바로 ‘돈’이라고 합니다. 특히 헌금이라는 주제가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제에 상관없이 우리는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보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분들 중 어떤 분들이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 조항이므로 신약교회 성도들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되며, 십일조를 드리라고 가르치는 목사나 교회는 성경을 제대로 모르고 돈만 밝힌다고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믿고 가르치고 실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다음의 말씀들을 믿기 때문에 십일조와 헌금을 주님의 몸된 지역 교회를 통해 주님께 드립니다.
1. 잠 3:9 네 재물과 네 모든 소출의 첫 열매들로 주를 공경하라.
이 말씀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적용되는 율법 조항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는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는 드림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재물과 소출은 명백한 '소득'입니다. 혹자는 율법의 십일조가 농사지어 얻는 곡물인데 신약 성도가 굳이 십일조를 드리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말이냐며 주제를 왜곡합니다. 잠언 3:9에서 말씀하는 재물과 소출은 사람의 기본 생활에 필요한 '소득'이며, 그것의 첫 열매들로 주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첫 열매들은 수확하는 '모든 열매'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두는 '모든 열매', 즉 모든 소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진리를 믿고 감사함으로 소득의 첫 열매를 주님께 드리는 것이 십일조에 담긴 '공경의 진심'입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드리면서 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감과 법을 어길 시에 당할 형벌을 두려워하여 드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복을 기대하면서 드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청지기로서 우리가 얻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드리면서 오직 감사와 공경을 담아 드립니다.
2. 마 22:21 ...그런즉 카이사르의 것들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것들'을 따로 지정하셨습니다. 카이사르의 것들이 있고 하나님의 것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정부로 대변되는 '카이사르의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을 지키며 납세의 의무와 같은 국민의 의무를 다함으로 '카이사르의 것들'을 카이사르에게 마땅히 바칩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재물과 소출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청지기로 여기셔서 맡겨주신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일부는 '카이사르의 것들'이며 일부는 '하나님의 것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재물과 소출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진리는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3. 고전 16:2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형통하게 하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두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드리는 것이 드림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신 사람은 많이 주신 것에 비례하여, 적게 주신 사람은 적게 주신 것에 비례하여 드리는 것이 십일조에 담긴 기본 개념입니다. 천원에 대한 십일조나 천 만원에 대한 십일조나,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드리는 비율은 같습니다. 또한 이 구절에는 신약 성도의 헌금을 '주의 첫날에' 드리며 또 '교회 모임'에서 드려야 한다는 원리가 담겨있습니다. 우리의 십일조와 그외 드리는 모든 헌금은 주일에 교회로 모여서 드려야 합니다. 성도가 자기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릴 때 교회가 아닌 사회 기업이나 자선 단체, 교회가 아닌 선교사 또는 선교 단체로 보내는 것은 신약 성경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신약 성도의 모든 드림은 그가 속한 지역 교회를 통해 드려져야 합니다.
4. 히 7:8 또 여기서는 죽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으나, 저기서는 살아 있다고 증언을 받는 이가 그것들을 받느니라.
율법의 십일조는(여기서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율법 이전에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분께서(저기서는) 십일조를 받으셨고, 지금 우리도 ‘살아 있다고 증언을 받는 이’, 즉 예수님께 십일조를 드립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드리면서 결코 교회의 목사님께 그것을 드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 때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백성의 십일조를 받아서 그것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가 이 구절을 기록하는 '당시'에도, 즉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도 '죽는 사람들' 즉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십일조를 받았습니다. 현재 시제로 기록된 '받다'라는 동사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 십일조는 유대인들에게 국한된 드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도들인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는 '살아 있다고 증언을 받는 이', 즉 예수님께서 그것들을 받으십니다. 그 동사 또한 현재 시제로 '받느니라'로 기록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신약 교회 성도들이 드리는 십일조는 목사가 받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고 증언을 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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